Sunday, October 31, 2010

종교 개혁일(宗敎 改革日, Reformation Day)

10월 31일 종교개혁일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종교 개혁을 주장하여 소위 구교 곧 카톨릭(Catholic Church)으로부터 개신교(Protestant Church)를 개혁,탄생시킨 사건을 희고, 기념하는 절기이다. 마르틴 루터 당시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 헌금하기 보다는 교회를 위하여 기부를 하고 공적을 쌓는 것이 마치 구원의 근거인양 호도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죄인의 사죄가 무조건 적으로 이루어지는 진리를 왜곡하여 돈을 내고 이를 구입하면 교회가 죄의 사죄를 보증하겠다는 취지의 면죄부(免罪符)까지 강매하고 있었다. 또한 인간으로서 카톨릭 교회의 수장(首長)에 불과한 교황(the Pope)의 절대 무오성을 주장하고,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님의 구속사역이 성취된 신약시대에도 구약시대 제사장과 같은 중보권을 독점하는 사제 제도를 유지하며 성직매매를 일삼는 등 비성경적인 교리와 제도로 인하여 카톨릭 교회는 극도로 타락한 상태에 있었다. 그리하여 루터는 근본적으로 카톨릭 교회에 반발하여 오직 성경에 의하여(Sola scripturea),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만 구원 얻으며 인간과 교회는 세상의 그 어느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Soli Deo Gloria) 존재해야 한다는 삼대 원칙을 성경 진리에 근거하여 주장하며 교회의 사상과 제도의 개혁을 부르짖은 결과 향후 긴 투쟁을 거쳐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틴 루터가 자신의 새로운 사상으로 새 제도를 수립하여 전혀 새로운 새 종교를 세운 결과 개신교가 생긴 것이 아니라, 다만 이미 태초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의 정통 진리에 맞도록 교회의 사상과 제도를 개혁한 결과 개신교가 탄생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즉 기독교(基督敎)는, 더욱 좁게는 개신교(改新敎)는 어느 한 인간이 창시한 종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하여 태초부터 주어진 성경 계시를 믿는 택한 자들의 정통 신앙이다.

실로 인간은 불완전한 유한자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분의 계시는 영원 무오하지만 인간이 만든 제도와 형식은 영원히 불완전하다. 따라서 성도는 자기 시대, 자기 지역, 자기 교회와 가정을 늘 성경 진리에 더욱 수렴하도록 개혁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교회는 영원히 개혁하여야 하며 따라서 종교개혁도 영원히 끝난 것이 아닌가. 단 이때 인간의 견해와 이해 타산이 아니라 오직 성경만이 개혁의 기준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주일을 맞을 때마다 성경에 근거한 철저한 자성의 자세로 각자의 신앙 사상과 교회의 제도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Source: www.jesusmind.net

Tuesday, July 27, 2010

[QT] 에린에게 배우기 (7/28/10)

[고린도전서 12:21-2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시편 145:8

에린의 삶은 보통의 여덟 살 난 아이들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뛰어놀고 아이스크림을 먹지만, 에린은 침대에 누워 튜브를 통해 음식물을 먹으며 아주 밝은 빛만 볼 수 있고 매우 큰 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삶은 질병과 극심한 장애와 계속 싸우는 가운데 주사바늘, 간호사, 그리고 병문안 등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에린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아이를 돌본, 그리하여 에린의 삶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줬던 훌륭한 가족에 둘러싸여 아홉 번째 생일이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말 한 마디 전혀 못하고, 그림에 색칠도 하지 못하고, 노래 한번 불러보지 못했던 에린과 같은 소중한 아이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에린의 가족의 친구 중 한 사람이 그것을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에린이 있었다는 것이 모두에게 너무 좋았어요. 그 아이는 우리에게 연민과, 무조건적인 사랑과, 조그만 일에도 감사할 줄 안다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어요.”

에린과 같은 아이들은 우리에게 이 세상이 완전한 사람이나 부자, 그리고 유명한 운동선수들을 위하여 예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신체와 정신, 감정이 어떤 상태에 있다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창 1:26-27), 동등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약한 자와 상한 자들, 그리고 주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셨으므로(시 145:8-9), 우리도 그 부분에 있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엡 5:1-2). 당신 삶에도 가르침을 주는 “에린”과 같은 아이가 있습니까?


세상에서 무거운 짐으로만 여기고
가치 없는 인생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가르쳐주네
하나님이 귀한 보석과 같이 그들을 사랑하심을

한 영혼의 가치를 절대로 과소평가 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2:21-25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Source: ODB

Monday, July 26, 2010

[유머] 할머니가 성경을 읽는 이유

몹시 추운 겨울날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시러 목사님이 오셨다.
강사 숙소에 할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정성껏 목사님의 시중을 들어주셨다.
목사님이 찬 것을 마시면 감기가 든다면서 콜라까지 보글보글 끓여다 주실 정도였다.

이 할머니는 쉬는 시간 틈틈이 성경을 자주 보고 계셨는데, 이상한 것은 성경을 다 읽지 않고 사람 이름만 읽는 것이다. 목사님이 그 이유가 궁금하여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할머니! 왜 사람 이름만 읽고 계신가요?” 그러자 할머니의 명쾌한 대답이 이어졌다.

“아이고 목사님! 곧 하나님 앞에 갈 텐데 성경은 다 읽어서 무엇합니까? 이 사람들이 다 천국에 있을 텐데 이름은 외워 가야 만나면 아는 척하지요.”

[QT] 시선을 고정하라 (7/26/10)

[누가복음 4:1-13]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1-2

운전 교관이 나에게 “앞을 보고 운전하세요.”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바로 옆에 것들에 신경 쓰지 말고, 멀리 앞쪽에 집중하라는 그의 교수 방식이었습니다. 계속적으로 좌우를 보는 운전자들은 도랑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탄은 예수님 대신 자기를 보게 유인하는 “운전 장애물”의 역할에 아주 능숙합니다. 만일 사탄이 우리의 주의를 끌게 되면 그는 우리로 하여금 길을 벗어나게 해 우리의 영적성장을 지연시키기도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도 이 수법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사탄이 와서 주님의 일을 성취하는 “보다 나은” 방법을 제시하며 주님을 방해하려 하였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림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보라고 말했습니다(눅 4:9-11). 그러나 예수님은 높은 건물에서 자신을 내던지는 것으로가 아니라, 자신이 십자가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는 것을 아셨기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12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에 관심이 있으셨고, 십자가를 피해서는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영적인 도랑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고(히 12:2) 사탄의 유혹에 어떤 눈길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유혹을
극복하는 오직 한 가지 길은
은혜로 강건케 해주시는
주님께 집중하는 것

사탄이 우리 시선 앞에 있지 않고 우리 뒤에 있도록 해야 한다.


누가복음 4:1-13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Souce: ODB

Sunday, July 25, 2010

[QT] 무엇에 대한 자신감? (7/26/10)

[고린도전서 10:1-12]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

건축자재상 앞을 걸어가다가 이런 우울한 메시지가 적힌 빨간 티셔츠를 입은 남자를 보았습니다.
“자신감 : 상황을 이해하기 바로 전 당신이 갖고 있는 느낌.”

나는 이 재미있는 아이디어에 웃고 말았지만, 그 셔츠가 분별력 있고 확실한 경고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본인의 능력이나 자격에 근거한 자신감으로만 일을 처리하려는 우리 모두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줍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과제들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잘못된 자신감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파멸의 원인이 되고, 우리는 그 실패의 무게에 억눌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자만심과 자족감의 나쁜 버릇을 상기시키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것에 대해 편지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기술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받은 그 은혜들을 범죄허가증으로 바꾸어버렸는지, 또 자신들의 파멸의 원인으로 드러날 자만심으로 바꾸었는지 언급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자만심이 우리에 대한 경고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편 118편 8절이 가장 좋은 길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혹은 우리 자신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당신은 누구를 신뢰하고 있습니까?


선 줄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넘어질까 조심하게 하라
이 말은 하나님만이 모두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기억나게 해준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 올바른 자신감이다.


고린도전서 10:1-12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Source: ODB

Friday, July 23, 2010

[QT] 간격 메우기 (7/24/10)

[요한복음 1:10-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요한복음 1:14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이루어놓은 몇 가지 업적들에 아이들이 감명 받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아이들이 내가 쓴 책들을 읽고, 내 강연에 감명을 받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나중에 나는 그들이 내 책을 아예 읽지 않았고, 내가 어디로 강연을 다녔는지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이 마침내 내 책을 한 권 읽더니, 단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식들이 내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책을 읽었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부모의 업적에 감명 받지 않습니다. 그들과의 간격을 메워주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현재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고, 미끄럼 사다리 게임이나 뒤뜰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요 1:14] 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해, 주님은 우리 수준에 맞춰 몸을 낮추어 이 땅에 오셨으며, 이것은 주님의 나라와 이 세상 사이의 간격을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메우신 주님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최고의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합당하시네 우리 평생토록
우리 모든 사랑과 최고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우리 죄와 허물 지시고 주님 돌아가셨네
오, 구주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할지라!

예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사이의
간격을 메워주셨다.


요한복음 1:10-18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Thursday, July 22, 2010

[유머] 3년만의 고백

내가 그를 짝사랑한 지 벌써 3년이 됐다. 그렇지만 나는 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백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어 사랑의 고백이 담긴 편지를 썼다. 그러나 직접 건네줄 기회를 매번 놓쳐 꼬깃꼬깃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편지를 건네주고는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다음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고 내게 만나자고 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저... 어제 나한테 2천원 왜 줬어?"

[유머] 십계명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의 순서를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이 외우면 잊을 수 없고 순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

일 = 일:절 나외에는 "다른신을 두지 말라."
이 = 이:상한 "우상을 섬기지 말라."
삼 = 삼: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사 = 사:업을 하지 말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오 = 오:로지 "네 부모를 공경하라."
육 = 육:혈포(대포 일종 살인 무기)로 "살인하지 말라."
칠 = 칠:보단장한 여인을 "간음하지 말라."
팔 = 팔:로 "도적질하지 말라."
구 = 구:차한 변명으로 "거짖증거 하지 말라."
십 = 십:원이라도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ODB] Grace, Mercy, And Peace (7/22/10)

[2 Timothy 1:1 - 1:10 ]

Bless the Lord, ... who crowns you with lovingkindness and tender mercies. - Psalm 103:1,4
The words grace and peace are found in all of Paul’s greetings in his New Testament letters to the churches. And in his letters to Timothy and Titus, he also includes mercy: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Lord”(2 Tim.1:2). Let’s examine each of these words.

Grace is what our holy God gives that we, as sinful people, don’t deserve. In Acts 17:25, we learn that “He gives to all life, breath, and all things.” His gifts include our very next breath. Even in our darkest hour, strength is given by God so that we can endure.

Mercy is what God withholds that we do deserve. In Lamentations 3:22, we read, “Through the Lord’s mercies we are not consumed.” Even when we’re wayward, God gives time and help for us to turn back to Him.

Peace is what God brings to His people. Jesus said: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to you; not as the world gives do I give to you”(John 14:27). Even in the worst of times, we have inner tranquillity because our God is in control.

We can be encouraged that throughout our lives the Lord will give us the grace, mercy, and peace we need to live for Him.


He giveth more grace when the burdens grow greater,
He sendeth more strength when the labors increase;
To added affliction He addeth His mercy,
To multiplied trials, His multiplied peace. — Flint

God’s grace is immeasurable, His mercy is inexhaustible, His peace is inexpressible.


2 Timothy 1:1-10

[1] Paul, an apostle of Jesus Christ by the will of God, according to the promise of life which is in Christ Jesus,
[2] To Timothy, a beloved son: Grace, mercy, and peace from God the Father and Christ Jesus our Lord.
[3] I thank God, whom I serve with a pure conscience, as my forefathers did, as without ceasing I remember you in my prayers night and day,
[4] greatly desiring to see you, being mindful of your tears, that I may be filled with joy,
[5] when I call to remembrance the genuine faith that is in you, which dwelt first in your grandmother Lois and your mother Eunice, and I am persuaded is in you also.
[6] Therefore I remind you to stir up the gift of God which is in you through the laying on of my hands.
[7] For God has not given us a spirit of fear, but of power and of love and of a sound mind.
[8] Therefore do not be ashamed of the testimony of our Lord, nor of me His prisoner, but share with me in the sufferings for the gospel according to the power of God,
[9] who has saved us and called us with a holy calling, not according to our works, but according to His own purpose and grace which was given to us in Christ Jesus before time began,
[10] but has now been revealed by the appearing of our Savior Jesus Christ, who has abolished death and brought life and immortality to light through the gospel,

Source: ODB

[QT] 은혜와 긍휼과 평강 (7/23/10)

[디모데후서 1:1-10 ]

여호와를 송축하라...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시편 103:1,4
은혜와 평강이라는 단어는 바울이 교회들에게 보낸 신약성경 서신서의 모든 인사말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디모데와 디도에게 보낸 편지에는 긍휼이라는 단어가 추가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후 1:2). 이 단어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은혜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 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7장 25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라고 배웁니다. 우리의 바로 다음 순간의 호흡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가장 힘든 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능히 견뎌낼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긍휼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류하고 계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22절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제멋대로 살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께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간과 도움을 베푸십니다.

평강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져다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기에 우리는 내적 평안함을 가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위해 사는데 필요한 은혜와 긍휼과 평강을 주신다는 사실에 우리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짐이 무거워질 때 주님은 더 큰 은혜를 주시고
일이 많아질 때 주님은 더 강한 힘을 주시네
고난이 더해지면 주님은 긍휼을 더하시고
시련이 늘어나면 주님은 평강을 늘려주시네


하나님의 은혜는 측량할 수 없고, 그의 긍휼은 다함이 없으며,
그의 평강은 표현할 길이 없다.


디모데후서 1:1-10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3]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4]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Source: ODB

Wednesday, July 21, 2010

[ODB] Hope (7/21/10)

[Psalms 23:1-6]

You are my hope, O Lord God; You are my trust from my youth. -Psalm 71:5
The ancient road from Jerusalem to Jericho is a narrow, treacherous path along a deep gorge in the Judean wilderness. Its name is Wadi Kelt, but it’s known as the valley of the shadow, for this is the location that inspired David’s 23rd Psalm. The place itself offers little reason to compose such a hopeful poem. The landscape is bleak, barren, and perilously steep. It’s a good place for thieves, but not for anyone else.

When David wrote, “Yea,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v.4), he was in a place where evil was an ever-present reality. Yet he refused to give in to fear. He wasn’t expressing hope that God would abolish evil so that he could pass through safely; he was saying that the presence of God gave him the confidence to pass through difficult places without fear of being deserted by Him. In another psalm, David said that the Lord was his hope (71:5).

Many claim to have hope, but only those whose hope is Christ can claim it with certainty. Hope comes not from strength, intelligence, or favorable circumstances, but from the Lord. As Maker of heaven and earth, He alone has the right to promise hope and the power to keep the promise.


Our strength and hope is in the Lord—
We rest secure in His sure Word;
And though we’re tempted to despair
We know we’re kept within His care. — D. De Haan

Hope for the Christian is a certainty—because its basis is Christ.


Psalm 23:1-6

[1] A Psalm of David. The LORD is my shepherd; I shall not want.
[2] He makes me to lie down in green pastures; He leads me beside the still waters.
[3] He restores my soul; He leads me in the paths of righteousness For His name's sake.
[4] Yea, though I walk through the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I will fear no evil; For You are with me; Your rod and Your staff, they comfort me.
[5] You prepare a table before me in the presence of my enemies; You anoint my head with oil; My cup runs over.
[6] Surely goodness and mercy shall follow me All the days of my life; And I will dwell in the house of the LORD Forever.

[QT] 소망 (7/22/10)

[시편 23:1-6]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시편 71:5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통하는 오래된 도로는 유대 광야에 있는 깊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 좁고 위험한 길입니다. 그 길의 이름은 ‘와디 켈트’이지만 ‘그림자 계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곳이 다윗에게 시편 23편의 영감을 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장소 자체는 그러한 희망적인 시를 짓는 데 아무것도 줄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풍경은 황량하고 메말라 있으며, 위험하게 가파른 경사가 있습니다. 산적들에게는 좋은 장소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4절)이라고 썼을 때, 그는 해를 당하는 것이 늘 현실적으로 가능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 굴복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해를 없애주셔서 그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라면 그가 힘든 장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두려움 없이,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편에서 다윗은 주님이 그의 소망이라고 말했습니다(71:5).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리스도가 소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만이 확신을 가지고 그렇게 주장할 수 있습니다. 소망은 힘이나 지능, 혹은 유리한 여건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소망을 약속하실 권리와, 그 약속을 지키실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의 힘과 소망은 주님 안에 있으니
주님의 확실한 말씀 안에서 편안히 쉴 수 있네
우리가 자포자기하고픈 유혹을 받더라도
주님이 우리를 보살피시며 지키신다는 것을 아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확실한 것이다.
그 기초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시편 23:1-6

[1] [다윗의 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Source: ODB

Tuesday, July 20, 2010

[유머] 착한 마음으로 남을 돕자

놀부 마누라가 장에 갔다. 다들 놀부 마누라의 고약한 성질을 아는지라 슬슬 피해 다녔다.
그런데 어느 간 큰 거지 한 명이 놀부 마누라에게 오더니 "마님, 한 푼만 줍쇼." 하는 것이었다.
심술기가 발동한 놀부 마누라는 지나가던 똥개 한 마리를 잡아와서는 "네가 이 똥개에게 아버지라고 한번만 부른다면 내가 동전 한 닢을 주지" 라고 말했다.
"한번 부르면 한 닢이라굽쇼? 그럼 열 번 부르면요?"
"그럼 당연히 열 닢을 주지."
흥미로운 구경거리에 사람들은 몰려들었고 이 거지는 정말로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하고 열 번을 불렀다. 놀부 마누라는 배꼽이 빠져라 웃고는 약속대로 동전 열 닢을 주었다.
그러자 이 거지는 더욱더 목청을 돋우어 이렇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감사해요, 어머니!!"

[유머] 하나님의 것과 내 것

김 집사와 이 집사와 박 집사, 세 사람이 모여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나님께 얼마만큼 바칠 것인가에 대한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고 박집사가 말했다. "나는 먼저 땅에 줄을 긋고 내가 가진 돈 전부를 공중에 던집니다. 줄 오른편에 떨어진 돈은 하나님께 바치고 왼편에 떨어지면 내 주머니에 넣습니다."
"썩 좋은 방법이 못되는데요." 하고 이집사가 말했다. "나는 땅에 원을 그려놓고 내 돈을 공중에 던지지요. 원 안으로 떨어진 돈은 하나님의 소유이고 원 바깥에 떨어진 것은 내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자 김집사가 돌아서서 한숨을 쉬고는,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께 바칩니다." 라고 말했다.
"그만 웃기시오, 뭐! 모든 걸 다 바친다구요." 다른 두 사람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렇소!" 김집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돈 전부를 던집니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말하지요. 공중에 머무는 것은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 것은 모두 제 것입니다."

[QT] 마지막 작별인사 (7/21/10)

[디모데후서 4:6-22 ]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디모데후서 4:6]

말기암 선고를 받은 47세의 랜디 파우쉬는 동료들과 학생, 그리고 친구들에게 마지막 강의를 하기 위해 카네기 멜론 대학으로 돌아왔습니다. 컴퓨터학 교수인 그는 150 명 정도가 자기의 강의를 들으러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400석의 강당이 가득 찼습니다. 한 시간 동안 파우쉬 교수는 청중에게 마음을 열고 죽음보다는 삶에 더 중점을 둔 유머와 통찰력으로 감동적인 고별강연을 했습니다. 몇 주가 안 되어 수백만의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강의 비디오를 보았고, 이 강의는 후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는 인생에서 무엇이 진실로 중요한가에 대해 종종 이례적으로 명료한 관점이 있습니다.

바울사도의 마지막 작별인사는 지난 세기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바울은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썼습니다(딤후 4:6-7). 디모데에게 전한 바울의 가르침은 여러 세대를 거쳐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도전을 줍니다. 그의 편지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끝이 나며(1:2; 4:22), 그 중간에는 하나님의 끊임없는 신실하심에 대한 찬양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죽어가는 자의 메시지는 살아있는 자에게 삶의 목적을 줄 수 있습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4:18)라는 바울의승리의 피날레는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살아가야 할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위하여 살고 있는가
아니면 사라질 것들을 위해서 살고 있는가
우리는 세상의 칭찬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날에 “잘했다”는 주님의 칭찬을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가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면, 살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6-22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15]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18]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Monday, July 19, 2010

[QT]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7/20/10)

[디도서 3:3-11]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데살로니가전서 5:22

내 손녀 하나는 몇 가지 음식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우유, 치즈, 달걀, 그리고 아이스크림 등이 피해야 할 음식에 속합니다. 그 음식들은 아주 작은 양이라도 이 아이에게 해롭습니다.

인생에서 피해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은 그 아이뿐만이 아닙니다. 알레르기가 몸의 건강에 관련된 것이라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인 우리 각자에게는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멀리해야 할 위험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영적으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든 모양의 악(살전 5:22).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하는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명백한 악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의 영적 활력에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리석은 변론과 분쟁(딤후 2:23; 딛 3:9). 이것은 분별력이 요구됩니다. 왜냐하면 어떤 변론은 믿음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답이 없거나 진실이 담겨있지 않은 변론은 불화를 일으킬 뿐입니다.

음란(살전 4:3). 성경은 결혼의 범위를 벗어난 남녀 간의 어떤 성적행위도 간음이라고 했습니다(창 2:24; 출 20:14; 고전 7:2; 히 13:4).

당신은 영적으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들을 피해가기 위하여기꺼이 노력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오늘 죄가 유혹하는 미끼들을 피하고
악한 생각들을 제어하라
그렇지 않으면 악한 것들이 당신을 조종하고
언젠가 당신을 지배하게 되리라!

죄를 피하려면 유혹의 싹을 잘라 버려라.


디도서 3:3-11

[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하지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여러 가지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를 일삼은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였으나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9]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Saturday, July 17, 2010

[QT] 비판하지 말라 (7/18/10)

[고린도전서 4: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

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라고 명하셨을때, 그것은 우리가 순진해야 된다거나 분별이 없어야 된다는 것을 뜻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는 실수나 잘못된 행동에 자주 마주치는 세상에서 비판적이며 분별력 있게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님이 의미 하신 것은 우리가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점을 생생하게 잘 지적하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고전4:5).

시인 로버트 번즈는 행동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바울과 비슷한 지적을 했습니다. “아직도 알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동기’, 즉 그들이 왜 그런 일을 하는가입니다.” 아무도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만이 어두움 속에 감춰진 것을 밝히 드러내실 수 있고, 그분만이 마음의 의도를 들춰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이나 두려움, 좌절, 상한 마음, 억눌린 죄와 같이, 사람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잠재된 힘들을 아십니다. 나아가 주님은 모든 순종하는 마음속에서 그 마음이 성숙하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침내, 종종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주님은 주님께서 완전하게 만드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주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때까지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살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합시다.


“비판하지도, 정죄하지도 말라”고
형제의 잘못을 감시하지 말라 하셨네
우리에게 주어진 오직 한 가지 과제는
스스로 돌아보아 자신의 잘못을 다스리는 것이라네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은 천천히 하고,
자신에 대한 판단은 빨리 하라.


고린도전서 4:1-5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Thursday, July 15, 2010

[유머] 유대인의 윤리관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우리가 따라야 할 윤리란 어떤 것인가요?]
[쉽게 예를 들면 이렇지, 만약 손님이 물건값을 내고 거스름돈 50살랑울 잊은 채 그냥 갔다고 하자. 이때 이 50실링을 혼자 호주머니에 넣어버릴 것인가, 아니면 동업자와 똑같이 나누어 가질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QT] 거래냐 아니냐 (7/16/10)

[누가복음 15:11-24]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 누가복음 15:19

당신이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수지맞는 거래를 좋아할 것입니다. 단지 할인가격으로 쇼핑뿐만 아니라, 그 대가로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굉장한 거래를 하게 된 경우 말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거래를 이해할 수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탕자의 계획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세 종류의 하인들이 있었는데, 매일 하는 일에 따라 급여를 받는 일용직 품꾼, 마을에 독립적으로 따로 살면서 주인집에서 장시간 일하는 고용하인, 주인집에 살면서 온전히 주인 가정을 위해 일하는 종속하인이 그것입니다.

탕자가 완전히 밑바닥까지 전락했을 때, 그가 사죄를 계획하면서 고용하인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어째서 감사하면서 종속하인이 되려하지 않았을까요? 일부 주석학자들은 아마도 그가 급여를 받으며 동시에 자기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방식의 흥정을 시도했으리라고 합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께 나아갈 때, “제가 주님을 섬기겠습니다만 그렇다고 주님께서 제 자유를 가져갈 수는 없습니다.”라는 태도를 취합니다. 그것이 당장은 좋은 거래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래가 훨씬 좋습니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팔을 펴시고 회개하며 나오는 죄인을 기꺼이 그분의 가족으로 받아 주실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이보다 더 좋은 거래도 없고 더 좋은 방법도 결코 없습니다!


주님, 제 삶을 받아 온전히 주의 것으로 만드시며
내 가난한 심령을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채우소서
제 모든 뜻과 열정과 자아와 자랑까지도
지금 내려놓사오니, 주님 제 안에 거하소서

그리스도께 내려놓을 때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다.


누가복음 15:11-24

[11] 또 이르시되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22]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