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October 31, 2010

종교 개혁일(宗敎 改革日, Reformation Day)

10월 31일 종교개혁일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종교 개혁을 주장하여 소위 구교 곧 카톨릭(Catholic Church)으로부터 개신교(Protestant Church)를 개혁,탄생시킨 사건을 희고, 기념하는 절기이다. 마르틴 루터 당시 카톨릭 교회는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 헌금하기 보다는 교회를 위하여 기부를 하고 공적을 쌓는 것이 마치 구원의 근거인양 호도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죄인의 사죄가 무조건 적으로 이루어지는 진리를 왜곡하여 돈을 내고 이를 구입하면 교회가 죄의 사죄를 보증하겠다는 취지의 면죄부(免罪符)까지 강매하고 있었다. 또한 인간으로서 카톨릭 교회의 수장(首長)에 불과한 교황(the Pope)의 절대 무오성을 주장하고,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님의 구속사역이 성취된 신약시대에도 구약시대 제사장과 같은 중보권을 독점하는 사제 제도를 유지하며 성직매매를 일삼는 등 비성경적인 교리와 제도로 인하여 카톨릭 교회는 극도로 타락한 상태에 있었다. 그리하여 루터는 근본적으로 카톨릭 교회에 반발하여 오직 성경에 의하여(Sola scripturea), 오직 믿음으로(Sola fide)만 구원 얻으며 인간과 교회는 세상의 그 어느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Soli Deo Gloria) 존재해야 한다는 삼대 원칙을 성경 진리에 근거하여 주장하며 교회의 사상과 제도의 개혁을 부르짖은 결과 향후 긴 투쟁을 거쳐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마르틴 루터가 자신의 새로운 사상으로 새 제도를 수립하여 전혀 새로운 새 종교를 세운 결과 개신교가 생긴 것이 아니라, 다만 이미 태초부터 주어진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의 정통 진리에 맞도록 교회의 사상과 제도를 개혁한 결과 개신교가 탄생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즉 기독교(基督敎)는, 더욱 좁게는 개신교(改新敎)는 어느 한 인간이 창시한 종교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 의하여 태초부터 주어진 성경 계시를 믿는 택한 자들의 정통 신앙이다.

실로 인간은 불완전한 유한자이다. 따라서 하나님과 그분의 계시는 영원 무오하지만 인간이 만든 제도와 형식은 영원히 불완전하다. 따라서 성도는 자기 시대, 자기 지역, 자기 교회와 가정을 늘 성경 진리에 더욱 수렴하도록 개혁하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교회는 영원히 개혁하여야 하며 따라서 종교개혁도 영원히 끝난 것이 아닌가. 단 이때 인간의 견해와 이해 타산이 아니라 오직 성경만이 개혁의 기준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종교개혁 주일을 맞을 때마다 성경에 근거한 철저한 자성의 자세로 각자의 신앙 사상과 교회의 제도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Source: www.jesusmind.net

Tuesday, July 27, 2010

[QT] 에린에게 배우기 (7/28/10)

[고린도전서 12:21-2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시편 145:8

에린의 삶은 보통의 여덟 살 난 아이들과는 아주 달랐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뛰어놀고 아이스크림을 먹지만, 에린은 침대에 누워 튜브를 통해 음식물을 먹으며 아주 밝은 빛만 볼 수 있고 매우 큰 소리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의 삶은 질병과 극심한 장애와 계속 싸우는 가운데 주사바늘, 간호사, 그리고 병문안 등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에린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아이를 돌본, 그리하여 에린의 삶을 사랑으로 가득 채워줬던 훌륭한 가족에 둘러싸여 아홉 번째 생일이 되기 전에 죽었습니다.

말 한 마디 전혀 못하고, 그림에 색칠도 하지 못하고, 노래 한번 불러보지 못했던 에린과 같은 소중한 아이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에린의 가족의 친구 중 한 사람이 그것을 아주 잘 표현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에린이 있었다는 것이 모두에게 너무 좋았어요. 그 아이는 우리에게 연민과, 무조건적인 사랑과, 조그만 일에도 감사할 줄 안다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어요.”

에린과 같은 아이들은 우리에게 이 세상이 완전한 사람이나 부자, 그리고 유명한 운동선수들을 위하여 예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신체와 정신, 감정이 어떤 상태에 있다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창 1:26-27), 동등한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약한 자와 상한 자들, 그리고 주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셨으므로(시 145:8-9), 우리도 그 부분에 있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엡 5:1-2). 당신 삶에도 가르침을 주는 “에린”과 같은 아이가 있습니까?


세상에서 무거운 짐으로만 여기고
가치 없는 인생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가르쳐주네
하나님이 귀한 보석과 같이 그들을 사랑하심을

한 영혼의 가치를 절대로 과소평가 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2:21-25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22]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24]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Source: ODB

Monday, July 26, 2010

[유머] 할머니가 성경을 읽는 이유

몹시 추운 겨울날 교회 부흥회를 인도하시러 목사님이 오셨다.
강사 숙소에 할머니 한 분이 오시더니 정성껏 목사님의 시중을 들어주셨다.
목사님이 찬 것을 마시면 감기가 든다면서 콜라까지 보글보글 끓여다 주실 정도였다.

이 할머니는 쉬는 시간 틈틈이 성경을 자주 보고 계셨는데, 이상한 것은 성경을 다 읽지 않고 사람 이름만 읽는 것이다. 목사님이 그 이유가 궁금하여 할머니에게 물어봤다.

“할머니! 왜 사람 이름만 읽고 계신가요?” 그러자 할머니의 명쾌한 대답이 이어졌다.

“아이고 목사님! 곧 하나님 앞에 갈 텐데 성경은 다 읽어서 무엇합니까? 이 사람들이 다 천국에 있을 텐데 이름은 외워 가야 만나면 아는 척하지요.”

[QT] 시선을 고정하라 (7/26/10)

[누가복음 4:1-13]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브리서 12:1-2

운전 교관이 나에게 “앞을 보고 운전하세요.”라고 계속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바로 옆에 것들에 신경 쓰지 말고, 멀리 앞쪽에 집중하라는 그의 교수 방식이었습니다. 계속적으로 좌우를 보는 운전자들은 도랑에 빠지기 쉽습니다.

사탄은 예수님 대신 자기를 보게 유인하는 “운전 장애물”의 역할에 아주 능숙합니다. 만일 사탄이 우리의 주의를 끌게 되면 그는 우리로 하여금 길을 벗어나게 해 우리의 영적성장을 지연시키기도 합니다. 사탄은 예수님에게도 이 수법을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사탄이 와서 주님의 일을 성취하는 “보다 나은” 방법을 제시하며 주님을 방해하려 하였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림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보라고 말했습니다(눅 4:9-11). 그러나 예수님은 높은 건물에서 자신을 내던지는 것으로가 아니라, 자신이 십자가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증명된다는 것을 아셨기에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12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에 관심이 있으셨고, 십자가를 피해서는 구원을 성취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영적인 도랑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예수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시키고(히 12:2) 사탄의 유혹에 어떤 눈길도 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유혹을
극복하는 오직 한 가지 길은
은혜로 강건케 해주시는
주님께 집중하는 것

사탄이 우리 시선 앞에 있지 않고 우리 뒤에 있도록 해야 한다.


누가복음 4:1-13

[1]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6]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Souce: ODB

Sunday, July 25, 2010

[QT] 무엇에 대한 자신감? (7/26/10)

[고린도전서 10:1-12]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린도전서 10:12

건축자재상 앞을 걸어가다가 이런 우울한 메시지가 적힌 빨간 티셔츠를 입은 남자를 보았습니다.
“자신감 : 상황을 이해하기 바로 전 당신이 갖고 있는 느낌.”

나는 이 재미있는 아이디어에 웃고 말았지만, 그 셔츠가 분별력 있고 확실한 경고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의식적으로 하나님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본인의 능력이나 자격에 근거한 자신감으로만 일을 처리하려는 우리 모두에게 주의를 환기시켜 줍니다. 만약 우리가 인생의 과제들을 우리 자신의 힘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잘못된 자신감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파멸의 원인이 되고, 우리는 그 실패의 무게에 억눌려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자만심과 자족감의 나쁜 버릇을 상기시키면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것에 대해 편지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기술하면서, 그들이 어떻게 자신들이 받은 그 은혜들을 범죄허가증으로 바꾸어버렸는지, 또 자신들의 파멸의 원인으로 드러날 자만심으로 바꾸었는지 언급하였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자만심이 우리에 대한 경고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시편 118편 8절이 가장 좋은 길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혹은 우리 자신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당신은 누구를 신뢰하고 있습니까?


선 줄로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넘어질까 조심하게 하라
이 말은 하나님만이 모두의 주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기억나게 해준다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이 올바른 자신감이다.


고린도전서 10:1-12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모두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뒤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니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들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Source: ODB

Friday, July 23, 2010

[QT] 간격 메우기 (7/24/10)

[요한복음 1:10-18]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요한복음 1:14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이루어놓은 몇 가지 업적들에 아이들이 감명 받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아이들이 내가 쓴 책들을 읽고, 내 강연에 감명을 받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나중에 나는 그들이 내 책을 아예 읽지 않았고, 내가 어디로 강연을 다녔는지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이 마침내 내 책을 한 권 읽더니, 단지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식들이 내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더 이상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책을 읽었다고 내게 말했습니다!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들은 부모의 업적에 감명 받지 않습니다. 그들과의 간격을 메워주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현재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나고, 미끄럼 사다리 게임이나 뒤뜰에서 술래잡기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의 세계로 직접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요 1:14] 라고 말했습니다. 달리 말해, 주님은 우리 수준에 맞춰 몸을 낮추어 이 땅에 오셨으며, 이것은 주님의 나라와 이 세상 사이의 간격을 단번에, 그리고 영원히 메우신 주님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신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주님이 우리의 최고의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합당하시네 우리 평생토록
우리 모든 사랑과 최고의 찬양을 받으시기에
우리 죄와 허물 지시고 주님 돌아가셨네
오, 구주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할지라!

예수님은 무한하신 하나님과 유한한 인간 사이의
간격을 메워주셨다.


요한복음 1:10-18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Thursday, July 22, 2010

[유머] 3년만의 고백

내가 그를 짝사랑한 지 벌써 3년이 됐다. 그렇지만 나는 내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백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친구의 말에 용기를 내어 사랑의 고백이 담긴 편지를 썼다. 그러나 직접 건네줄 기회를 매번 놓쳐 꼬깃꼬깃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에게 편지를 건네주고는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다음날 그에게서 전화가 왔고 내게 만나자고 했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그는 내게 말했다. "저... 어제 나한테 2천원 왜 줬어?"